2023년 7월 14일 금요일

[벌거벗은 세계사] 최초의 남극점 도달 위한 아문센과 피어리, 세기의 대결

 

최근 급속한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위기와 관련해 자주 거론되는 지역이 지구의 양 극단에 자리한 남극과 북극이다. 이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이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고 있기도 하다. 실제 극지의 빙하가 급속히 녹으면서 이는 기후 위기를 더 촉진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대부분 바다로 이루어진 북극의 빙하는 앞으로 이대로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그 존재가 사라질 위기다. 육지로 이루어진 남극의 빙하는 상대적으로 그 위험을 덜 받고 있지만, 거대 빙하의 붕괴와 빙하의 면적이 줄어드는 현상은 진행형이다. 특히, 남극 빙하의 소멸은 지구 기후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남극은 기후 위기의 최 전선에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남극은 이 외에도 지구에서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땅이기도 하고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거대한 얼음층으로 덮여 있는 남극은 그 면적이 미국의 1.4배에 이르고 광대한 땅 곳곳에는 풍부한 광물 자원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오랜 세월 인간의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았던 탓에 자연환경이 원시 그대로 보전되고 있다.

이는 지구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있어 남극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남극은 자원이라는 실익 외에도 학술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아직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점에서 모든 국가들이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남극은 1959년 다수의 국가들이 참여한 남극 조약에 따라 특정 국가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류 공동 번영을 위한 터전으로 함께 이용할 것을 합의하긴 했지만, 이 조약은 2048년에 만료된다







남극에는 선진국을 포함해 개발도상국까지 다수의 국가들이 기지를 조성하고 각종 연구와 탐험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남극을 두고 벌어질 주도권 경쟁을 대비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에 대비해 남극에 더해 더 많이 알고 각종 성과를 토대로 남극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가치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고 있는 남극에는 치열한 탐험 경쟁의 역사가 있다. 1911년부터 1912년 사이 있었던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과 영국의 탐험가 스콧이 이끄는 양국 탐험대의 남극점 도달을 위한 경쟁이다. 두 탐험대는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기 위해 자국의 명예를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 경쟁에서 앞선 아문센 탐험대는 최초의 남극점 도달자라는 명예를 얻었지만, 그들에 뒤처진 스콧 탐험대는 귀환 도중 대원 전원이 사망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남극의 탐험 역사는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극 탐험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대항해 시대를 이끈 포르투갈, 스페인에 비해 뒤늦게 해양 진출을 했지만, 막강한 해군력을 앞세워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이겨냈고 바다를 이용한 대외 진출을 주도했다. 18세기 영국은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해가 지지 않은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런 영국의 대외 진출은 이미 알려진 대륙을 벗어나 제7의 대륙이라 할 수 있는 남극으로 향했다

영국 해군 함대가 남극권에 위치한 섬을 찾았고 1775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남극의 해안을 탐험했다. 그속에서 영국 탐험대는 거대한 빙벽과 빙하로 가득한 남극의 해안에서 고전하며 남극 대륙 상륙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 탐험대는 남극이 거대한 얼음층으로 뒤덮은 땅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에도 영국은 지속적으로 남극에 탐험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남극 대륙 상륙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남극의 거대한 빙벽은 배가 닿기 어려웠다

그 사이 남극의 존재가 세계 각국에 알려졌고 식민지 확보 경쟁을 하던 서구 열강들은 북극에 이어 앞다투어 남극 탐사에 나섰다. 하지만 남극은 혹독한 추위와 거대한 얼음층 등으로 인해 쉽게 닿을 수 없는 땅으로 오랜 세월 남았다

남극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가 이루어진 건 20세기 들어서였다. 1901년 영국은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남극 탐사대를 파견했다. 그 탐사대의 책임자는 영국 해군 장교 로버트 스콧이었다. 그는 탐험대를 이끌고 인류 최초로 남극 대륙에 상륙했다. 본격적인 남극 탐사 역사의 시작이었다

스콧 탐험대는 곧바로 남극점을 향한 탐사를 시작했다. 당시 극지를 포함한 오지 탐험은 국가의 영역을 넓히고 학술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그 나라의 국력을 드높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특히, 가장 먼저 남극점을 도달하는 건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남극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했다. 스콧 탐험대는 남극의 강추위와 열악한 환경에 대해 준비하지 못했다. 남극점에 도달하기 위해 알아야 할 루트도 없었고 무엇보다 남극의 지형도 알 수 없었다. 사전 지식이 없는 남극점 탐사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결국, 스콧 탐사대는 남극점 탐사를 중도에 멈추고 돌아와야 했다

남극점 도달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스콧 탐사대는 남극 상륙 후 다양한 연구 활동과 탐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남극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향후 남극 탐사에 큰 도움이 됐다

큰 성과를 가지고 1904년 영국으로 돌아온 스콧은 남극 탐험의 영웅으로 영국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미지의 대륙이었던 남극에 영국 국기를 가장 먼저 꽂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향후 그가 추진하는 남극대륙 재 탐사에 있어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스콧은 남극점 최초 도달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탐사를 준비했다. 마침 1909년 미국 탐험대가 세계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하면서 스콧의 남극점 탐사에 대한 의지는 한층 더 강해졌다. 다만, 그 탐사를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긴 항해를 견딜 수 있는 최신의 배가 있어야 했고 수년간의 탐사를 위한 대량의 물자들을 준비해야 했다. 영국 정부의 지원만으로 이를 충당하기 어려웠다

이에 스콧 탐험대는 기업광고 유치 등으로 이를 해결했다. 지금은 보편화된 오지 탐험을 위해 스폰서를 구하고 기업들은 마케팅 효과 등을 고려해 비용을 지원하는 형식의 자금 조달이 최초로 이루어졌다. 스콧 탐험대는 탐험 기간 비용을 지원한 기업들을 위한 홍보 포스터를 촬영하는 등 일종의 광고를 하기도 했다

스콧 탐험대는 국민적인 기대와 성원, 자금 확보, 1차 탐험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한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1910년 남극점 탐사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당연히 그의 탐사는 영국을 비롯한 세계 언론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극점 도착을 위한 탐험에 다른 탐험대가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스콧 탐험대가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남극 탐험을 준비하는 사이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은 조용히 남극 탐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1905년 북극항로를 새롭게 개척하는 등 극지 탐험을 통해 명성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나라 노르웨이 당시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지금은 북유럽의 부국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20세기 초반 노르웨이는 국력에서는 영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탐험을 위한 준비과정이 수월하지 않았다. 대규모 탐험대를 조직한 영국 스콧 탐험대와 비교해 아문센의 탐험대는 크게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강국인 영국 탐험대와의 경쟁구도가 알려진다면 상당한 견제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이에 아문센은 남극 대륙 탐사를 준비하면서 그 사실을 극소수에게만 알리며 보안을 유지했다. 심지어 함께 탐험에 나선 대원들에게도 북극 탐사로 알렸고 남극을 향한 항해가 한참 이루어진 후에야 사실을 밝혔다

이렇게 뒤늦게 아문센 탐험대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세계 각국은 남극점 도달을 놓고 벌이는 스콧의 영국 탐험대와 아문센의 노르웨이 탐험대의 경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는 말 그대로 누구도 닿지 못한 미지의 장소를 향한 도전이었고 이전에 없었던 대결이었기 때문이었다

긴 항해를 거쳐 양극 탐험대는 1911 1 4일의 차이를 두고 영국 스콧 탐험대와 노르웨이 아문센 탐험대가 남극 대륙에 상륙했다. 양국 탐험대는 상륙 지점에 캠프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남극점 도달 경쟁에 돌입했다. 초기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고 양국 탐험대에는 긴장감이 생겼다. 하지만 도착 후 즉시 남극점 도전을 할 수 없었다. 남극에서 3월부터 10월까지는 극한의 날씨가 계속되는 겨울로 밤이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지형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욕만으로 탐사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탐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국은 큰 대조를 보였다. 아문센 탐험대는 북극 탐험 과정에서 원주민들로부터 습득한 노하우를 활용한 개 썰매를 중요한 이동 수단으로 삼았지만, 스콧 탐험대는 조랑말과 탐험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모터 썰매를 이동 수단으로 삼았다. 스콧 탐험대는 1차 탐험 때 개 썰매를 이용했지만, 운영 미숙으로 오히려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에 그들에게 보다 익숙한 조랑말을 이용한 썰매를 고안했다. 여기에 남극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할 수단으로 모터 썰매를 추가했다. 준비에 있어서는 영국 탐험대가 더 앞선 듯 보였다

하지만 아문센 탐험대는 탐사에 특화된 대원들로 구성되고 있었고 개 썰매 운영에 능숙했다. 이는 향후 탐사에 아문센 탐험대가 우위를 점하는 요인이 됐다. 또한, 아문센 탐험대는 남극점으로 향하는 최단거리 루트를 고려한 일정을 계획했고 이를 실행했다. 스콧 탐험대는 1차 탐험 때 개척했던 루트를 이용했지만, 이는 익숙함이라는 장점에도 아문센 탐험대보다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1911
10 19일 준비를 마친 아문센 탐험대는 남극점 도달을 위한 여정을 위한 첫 지점은 거대 얼음 지대 돌파를 시작했다. 스콧 탐험대는 그보다 늦은 11 1일 캠프를 출발했다. 출발 시점에서도 아문센 탐험대가 앞섰다. 아문센 탐험대는 얼음 지대를 지나 높은 산맥 지대를 통과하며 순조롭게 남극점으로 향했다.

스콧 탐험대 상황은 달랐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모터 썰매가 고장 나면서 활용할 수 없었고 조랑말들 역시 남극의 강추위에는 취약했다. 여기에 거대한 눈 폭풍이 그들의 이동을 어렵게 했다스콧 탐험대는 이동에 비효율적인 조랑말들 도살하고 대원들이 짐을 직접 운반하며 이동했다출발이 느렸던 스콧 탐험대는 진행 속도 역시 느려졌다. 그 사이 아문센 탐험대는 최고 난코스인 산맥 지대를 넘어 남극점이 있는 고원지대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를 알리 없었던 스콧 탐험대는 그들이 경쟁에서 앞서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개척했던 루트를 이용하고 있었고 그 루트에서 아문센 탐험대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스콧 탐험대는 아문센 탐험대다 최단 거리 루트를 이용해 남극점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앞서가고 있다는 확신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 스콧 탐험대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했다

앞선 출발, 거리상 이점, 날씨의 도움까지 받은 아문센 탐험대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남극점으로 향했고 1911 12 14일 남극점 도달에 성공했다. 아문센 탐험대는 남극점 도달 증명을 위해 수차례 검증을 했고 스콧 탐험대의 도착을 일정 기간 기다리는 여유도 가졌다. 아문센 탐험대는 노르웨이 국기가 펄럭이는 텐트를 남극점에 설치하고 베이스캠프 복귀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 여정 또한 순조로웠다

이렇게 아문센은 남극점 최초 도달자라는 영예와 함께 세계적인 탐험가로서 그 명성을 떨치게 됐다

아문센 탐험대가 떠난 이후 한 달여가 지난 시점인 1912 1 16일 스콧 탐험대가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했다. 악전고투 끝에 이룬 성과였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노르웨이 국기가 펄럭이는 텐트였다. 스콧 탐험대로서는 엄청난 상실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스콧 탐험대는 세계 최초로 남극 대륙에 상륙한 탐험대라는 영예와 함께 최초의 남극점 도달 탐험대의 영예를 더하려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스콧 탐험대는 실망감을 안고 머물 수 없었다. 그들은 남극의 겨울이 찾아오기 전 귀환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스콧 탐험대는 생존을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남극점 도달 여정도 힘들었지만, 귀환 여정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귀환을 대비해 루트 곳곳에 묻어둔 식량과 난방 연료 등의 물자를 찾지 못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귀환 과정에서 거대한 크레바스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대원들이 부상을 입었다. 날씨 역시 그들 편이 아니었다

스콧 탐험대는 힘겨운 걸음을 계속 이어갔지만, 극한의 상황을 더는 견디지 못했다. 스콧 탐험대는 베이스캠프를 불과 250킬로 미터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그들의 텐트에서 사망했다. 그들의 유해는 그들을 찾아 나선 구조대에 의해 사망 후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발견됐다. 남극 탐사 영웅의 비참한 최후였다

하지만 스콧은 죽음의 순간까지 그들의 여정을 기록한 탐험 일기를 남겼다. 이는 그들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극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는 기록이었다. 아울러 스콧 탐험대는 다수의 과학자들이 함께했고 그들의 연구는 남극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향후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

스콧은 남극점 도달 경쟁에서는 패자였지만, 남극 탐험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영웅이었다. 지금의 남극 연구는 스콧과 같은 탐험가들의 헌신과 의지를 통해 축적한 기록과 정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물론, 남극 탐험의 초창기 목적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탐험가들의 노력은 결코 폄하할 수 없다.

다만, 그런 수많은 희생 속에 그 존재가 알려지고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할 땅이 된 남극이지만, 그 남극이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 이권 다툼이 장이 되고 강대국들만을 위한 땅이 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 남극은 어느 누구의 땅도 아니고 인류 모두의 땅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극의 생계 환경을 파괴하는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모두가 긴장해야 할 시점이다. 파괴된 남극은 인류 미래 자원의 보고 이전에 인류의 파멸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남극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인류 공동 번영을 위한 방향이 돼야 한다


사진 : 프로그램 / 픽사베이, : jihuni74

2023년 7월 10일 월요일

최강야구 48회, 승리로 가는 지름길 없는 야구, 기본의 중요성

 

10경기 7할 승률 달성으로 선수 방출의 위기를 극복한 최강야구 몬스터즈가 연승으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몬스터즈와의 첫 경기에서 콜드패를 당한 이후 절치부심하며 2차전을 준비했던 경북고는 몬스터즈의 관록을 극복하지 못했고 야구가 힘만으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을 절감해야 했다

큰 고비를 넘긴 몬스터즈는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즌 11번째 경기를 준비했다. 승리에 대한 중압감이 컸던 이전 경기에서 최강야구의 경기전 화면은 비장함과 간절함으로 채워졌다. 경기전 농담을 한 마디 하기도 어려운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시즌 10번째 경기 결과에 따라 선수 방출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선수단 전체는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10번째 경기 콜드승은 몬스터즈 선수들에게 여유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의지까지 희미해진 건 아니었다.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 시즌 승률 7할 달성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다시 다음 20경기에서 7할 승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선수 방출이 이루어지는 옵션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기는 분위기를 최대한 이어가는 게 중요한 몬스터즈였다

이에 맞서는 경북고는 몬스터즈와의 1차전에서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후보인 타자 겸 투수 전미르를 선발 등판시키고도 마운드가 붕괴되면서 완패한 기억이 있었다. 경북고는 그때와는 다른 경기력을 보여야 했다. 이미 몬스터즈에게 아픈 패배를 안겼던 장충고 경기를 그들도 재현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이런 경북고를 상대하는 몬스터즈는 경기 전 전력 누수가 있었다. 독립리그 선수로 활동 중인 내야수 황영묵과 최수현이 리그 일정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햄스트링 부상 중인 내야수 정근우와 팔꿈치 부상이 있는 외야수 이택근도 경기 출전이 불가능했다. 몬스터즈 김성근 감독은 다시 한번 라인업 작성에 고민을 해야 했다

내야는 대체 선수로 대학생 선수 원성준과 부상 대체 선수로 임시 합류한 고영우가 있지만, 선수들의 이탈로 약해진 타선에 힘을 실어줄 선수가 부족했다. 특히, 지명타자 자리에 설 수 있는 서동욱, 이홍구의 최근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 라인업 작성에 어려움을 더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택은 서동욱이었다. 서동욱은 시즌 1에서 내. 외야를 오가는 멀티 수비 능력에 득점권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는 등 필요할 때 힘이 되는 선수였다. 하지만 시즌 2에서 서동욱은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주로 벤치를 지키는 처지가 됐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타격감도 떨어져 있었다

이런 서동욱에게 정근우가 구원자로 나섰다. 부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정근우였지만, 그는 연습 중인 선수들에게 타격과 관련한 조언을 해줬다. 정근우는 몬스터즈 선수이기도 하지만, 최근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도 쌓아가는 중이었다.

이런 정근우의 조언은 간결하지만, 필요한 부분을 잘 짚어냈다. 정근우의 조언을 받으며 서동욱은 타격감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김성근 감독이 그를 선발 지명타자로 8번 타순에 이름을 올린 이유였다. 김성근 감독은 마지막까지 고심하다 기존 선발 라인업의 선수 이름을 지우고 그를 넣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이 외에도 김성근 감독은 선발 투수 선택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기존 몬스터즈의 선발 투수는 원투 펀치인 이대은과 오주원 그리고 대학생 투구 정현수가 나섰다. 경북고와의 2차전에서 김성근 감독은 사이드암 신재영을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예상치 못한 결정이었다. 신재영은 최강야구 시즌 2에서 트라이아웃을 거쳐 영입됐고 주로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그 과정에서 기복 있는 투구를 하며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재영은 김성근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은퇴 한 이후 새로운 구종을 추가하는 등의 열정을 보였다. 김성근 감독은 이런 신재영에서 선발 투수의 기회를 주며 동기 부여를 했다. 이 역시 매우 성공적인 결과로 연결됐다

경기 분위기는 경기 초반 대량 득점에 성공한 몬스터즈가 초반부터 주도했다. 경북고 선발 투수 김주원의 제구 난조가 원인이 됐다. 김주원은 1회 초 수비에서 뛰어난 구위와 변화구로 가볍게 이닝을 마무리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2회 초 김주원은 1 후 몸 맞는 공으로 첫 출루를 허용한 이후 급격히 제구가 흔들렸다몸 쪽 공이 몸 맞는 공이 되면서 몸 쪽 공 승부에 부담이 생겼고 주자가 출루한 상황에서 투구 폼을 빠르게 하는 동작이 되면서 투구 밸런스가 급격히 흔들렸다. 몬스터즈는 상대 투수의 연이은 볼넷 허용으로 만루 기회를 잡았다

1사 만루에서 타석에 선 타자는 8번 타순의 서동욱이었다그때까지만 해도 타격감이 떨어져 있는 서동욱에게 만루 기회가 찾아온 것이 몬스터즈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저 서동욱이 병살타를 때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동욱은 만루에서 제구에 주력한 상대 선발 투수의 몸쪽 공을 힘 있게 받아쳤고 그 공은 우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으로 연결됐다. 시즌 2 개막전에서 나온 정성훈의 만루 홈런에 이어 시즌 두 번째 팀 만루 홈런이었다. 타격 부진으로 정근우에게도 조언을 구했던 서동욱에게는 그동안의 부담을 털어내는 한방이었고 몬스터즈로서는 모처럼 경기 초반 득점으로 편안한 흐름의 경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초반 4득점했지만그다음 공격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만루 홈런 허용 이후에도 경북고 선발 투수 김주원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다. 몬스터즈는 볼넷과 안타를 더하며 추가 득점 기회를 잡았다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1 1, 2루에서 타석에 선 원성준은 3볼의 유리한 볼 카운트 승부를 했다. 여기서 몬스터즈 3루 코치는 히팅 사인을 하며 적극적인 베팅을 주문했다원성준 역시 치고 나가려는 의지가 강했다

적극적인 타격은 좋았지만원성준은 스트라이크와 거리가 먼 몸쪽 높은 공에 방망이가 나갔고 제대로 스윙을 하지도 못한 채 공이 방망이에 맞았다골라냈다면 1 만루가 될 상황은 평범한 내야 땅볼과 함께 2 2, 3루로 변했다. 상대 선발 투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몬스터즈의 공격 흐름도 끊기고 말았다.

통상 히팅 사인이 나와도 스트라이크를 타격하는 게 보통이다. 나쁜 공을 골라낼 수 있는 타자의 능력을 고려한 작전이었지만원성준의 지나친 의욕은 어이없는 공에 방망이가 나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순간 몬스터즈의 벤치 분위기는 만루 홈런의 들뜬 분위기가 사라지고 찬물을 끼얹는 듯 숨죽이는 모습이었다. 김성근 감독 역시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원성준을 질책했다. 정성훈이 원성준의 플레이에서 잘못된 점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며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끊어진 몬스터즈의 공격 흐름은 한동안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발 투수 신재영의 호투가 몬스터즈의 승리 가능성을 매 이닝마다 높여나갔다. 신재영은 완벽에 가까운 제구가 변화구로 구사 능력으로 경북고 타자들을 꼼짝 못 하게 했다.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신재영은 변화구는 쉽게 공략하기 힘든 마구와 같았다

고비는 있었다. 2회 말 수비에서 신재영은 경북고 선두 타자인 이승헌에게 좌측 담장에 맞는 장타를 허용했다. 무심코 던진 변화구가 힘없이 가운데 몰린 결과였다. 맞는 순간에는 홈런을 직감하게 하는 타구였다. 이는 몬스터즈 선수들은 물론, 타자도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그 타구는 펜스를 직접 때렸다. 여기서 경북고 선수의 아쉬운 플레이가 나왔다. 홈런으로 여긴 타구에 경북고 타자는 날아가는 공을 감상하며 천천히 베이스러닝을 했다. 타구가 펜스에 맞은 걸 확인했을 때는 2루에도 향할 수 없었다. 전력 질주를 했다면 2루타가 될 수 있는 타구였다. 경북고 타자는 타구를 날리고 멋지게 베트 플립을 하는 등 프로선수와 같은 멋을 부렸지만, 그 결과는 장타를 단타로 만들었다.

이는 기본을 망각한 플레이였다. 1루수였던 이대호 역시 2루타가 단타로 둔갑된 상황에서 타자 주자를 강하게 질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플레이는 경북고가 추격할 수 있는 흐름을 스스로 놓치는 결과가 됐다.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도루마저 비디오 판독을 거쳐 실패하면서 경북고는 경기 흐름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북고는 그 안타가 경기에서 유일한 그들의 안타일지는 알지 못했다

이후 경기는 몬스터즈 선발투수 신재영의 완벽투로 장면 장면들이 채워졌다. 신재영은 2회 말 안타 허용 이후 6회까지 더 이상의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고 사사구도 없었다. 완벽투 그 자체였다. 그의 완벽투는 7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좌완 오주원이 이어받았다오주원은 완벽한 제구를 바탕으로 경북고 타자들에게 단 한 번의 진루도 허용하지 않는 투구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결국, 경북고는 1개의 안타만을 기록한 채 추가 실점을 더하며 0 : 7로 완패했다. 1차전에 이어 마운드는 사사구 11개를 내주며 스스로 무너졌고 타자들은 몬스터즈 투수들의 관록을 넘어서지 못했다. 야구가 얼마나 섬세하고 상황마다의 대처 능력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느끼는 경기였다 경북고 선수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경북고의 3번 타자인 임종성은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일대 일 특별 레슨을 받으면서 자신을 발전시킬 소중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몬스터즈는 신재영이라는 또 한 명의 승리 카드를 얻었고 2경기 연속 완승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게 됐다. 타격 부진에 시달렸던 서동욱이 결정적인 만루 홈런으로 승리를 이끌면서 야수진에 또 다른 옵션도 더해졌다. 부상 선수들의 공백도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었다

최강야구 48회는 야구가 미묘한 플레이 한 개에 흐름이 달라지고 승패를 엇갈리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경기 내내 꾸준함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야구가 공을 던지고 치기만 하는 공놀이가 아닌 다양한 변수가 발생하고 그에 맞는 상황 대처 능력이 필요함을 보여줬다. 이점에서 최강야구 48회는 야구의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한판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 jihuni74

2023년 7월 9일 일요일

이기는 야구의 새 방법 제시한 메이저리그 단장 이야기 담은 영화 ‘머니볼’

 

현대 사회에서 프로스포츠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인기 프로스포츠의 넓은 저변은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상승시켰고 그에 파생되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도록 했다. 과거 프로스포츠는 경기장의 관중수익에 의존했지만, 최근에는 방송 중계권, 상표권을 이용한 각종 마케팅을 활발히 하면서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제 프로스포츠의 시장 규모는 상승을 초월하고 있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수익도 크게 증가했다. 프로스포츠 스타들의 연봉 수준은 커진 시장에 비례하고 있다. 프로 스포츠에서의 성공은 막대한 부와 명예를 불러오고 있다.

 

이에 프로스포츠 구단의 운영은 단순히 좋은 성적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벗어나 경영의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재정적인 이익 창출에 더해 운영 전반에서 경영학의 요소가 추가되고 있다. 이를 위해 누적된 선수들의 성적이나 각종 상황 변수 등을 고려한 경기 데이터는 수학적 그리고 통계학적 분석을 토대로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이를 경기에 적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세이버메트릭스라 불리는 야구 분석학이 운영의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거의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세이버메트릭스를 적용해 선수단 구성 운영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구단들로 이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이런 세이버메트릭스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성과를 최초의 메이저리그 구단이 오클랜드 에슬레틱스를 있다.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에서 대표적인 스몰마켓 구단이다. 연고지 인구가 많지 않고 관중 수익 규모가 크지 않은 오클랜드는 구단의 매출이니 수익 창출에 제한이 있다. 좋은 성적을 위해 필요한 우수한 선수 영입에 필요한 자금 투입에 제한이 생기 수밖에 없다.





 

마디로 메이저리그 대표적 가난한 구단인 오클랜드지만, 팀은 꾸준히 지구 우승을 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강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클랜드가 속한 메이저리그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에는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LA 에인절스, 시애틀 매리너스, 휴스톤 에스트로스, 텍사스 레인저스가 속해 있다. 이들 구단들은 오클랜드보다 시장과 뛰어난 시설의 경기장, 선수 구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틈에서 강자의 자리를 잃지 않았다.

 

이런 오클랜드가 아매리칸리그 서부지구 강자로 오랜 세월 군림하는 있어 중요한 역할을 인물이 빌리빈 단장이다. 지금은 오클랜드의 수석 고문으로 현역에서 물러나 있지만, 그가 단장으로 있던 시절 오클랜드는 최고의 저비용 고효율의 구단으로 명성을 높였다. 이는 야구단의 운영에 있어 경영학적 요소를 과감히 도입해 성공한 사례로 지금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빌리빈이 주도하는 오클랜드의 야구를 두고 사람들은 머니볼이라 불렀다. 머니볼은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또는 기술로 요약되는데 오클랜드와 같은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스몰마켓 구단의 성공적 구단 운영 바이블로 알려져있고 경영학의 이론이기도 하다.

 

머니볼은 빌리빈의 오클랜드를 중요한 사례로 하며 경영학서적으로 출간되기도 했고 2011년에는 스타 배우 브래드피트가 주인공 빌리빈 역을 맡은 영화로 제작되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영화 머니볼은 오클랜드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21세기 들어 최다 연승인 20연승을 기록하며 당시 미국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던 2002 시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해 오클랜드는 빌리빈 단장이 주도한 새로운 야구 머니볼을 앞세워 시즌 103승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시즌을 시작하기 전망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2001 시즌 오클랜드는 정규 시즌 102승을 기록하며 지구 우승에 성공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메이저리그 대표적인 명문 구단이자 부자 구단인 뉴욕 양키즈에 패하며 포스트시즌 1라운을 통과하지 못했다.

 

오클랜드는 이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원치 않은 리빌딩을 해야 했다. 오클랜드는 2001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은 주력 선수들의 이적을 눈뜨고 지켜봐야 했다. 가난한 구단인 오클랜드는 부자 구단들과 머니게임을 형편이 아니었다. 구단주는 이런 상황에도 자금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동안 없는 살림에도 내부 선수를 육성하고 자금을 짜내며 성적을 유지했던 빌리빈이었지만, . 타에서 주력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애서 강한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구단 내부의 자세는 안이했고 기존의 방식을 답습할 뿐이었다. 빌리빈은 오클랜드가 이기는 팀으로서 그 자리를 지킬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는 내부 선수 육성과 트레이드를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대로 라면 성적 급하락은 피할 없는 현실이었다.

 

대대적인 리빌딩을 할 수도 있었지만, 구단의 자금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부진한 성적은 중요한 수익원인 관중수익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고 구단의 재정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었다. 빌리빈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건 구단 생존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이런 빌리빈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보였다. 그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참고자료 정도로 여겨졌던 세이버메트릭스를 운영 전반에 적용하는 방안이었다. 이는 선수구성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통계학적 기법을 적극 활용해 그에 필요한 선수들을 영입하고 선수평가의 방법도 크게 변화시켰다. 선수 평가에 있어 전통적인 평가 지표인 타율과 타점, 홈런 대신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출루율에 대해 비중을 높였다.

 

이는 가용한 자금을 최대한 활용해 그에 상응하는 선수를 영입하지 않고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에 근거해 가장 많은 승리를 있는 선수 조합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기존 구단 프런트와 코치진의 반발이 뒤따랐다. 내부 갈등도 커졌다.

 

하지만 빌리빈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이론을 구현하기 위해 야구와는 관련이 없는 경제학을 전공한 인물을 부단장으로 임명해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을 철저하게 구현하려 했다. 속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있는 방안을 찾고 실천에 옮겼다.

 

결과 오클랜드는 리그에서 저평가됐던 선수들, 이전 소속팀에서 방출된 선수들, 전성기를 지난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영입됐다. 어떻게 보면 오합지졸과 같은 선수 조합이었다. 당연히 구단 안팎의 비난과 우려가 쏟아졌다. 빌리빈은 그가 가는 길이 옳고 이길 있는 다른 방법임을 결과로 증명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다소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빌리빈 역시 마음 한 편에는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지 대한 걱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만약, 그의 시도가 실패한다면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단장으로 낙인찍히고 또 다른 기회를 잡지 못할수도 있었다. 그만큼 그의 시도는 혁신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스포츠의 세계가 결과로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좋은 의도도 결과가 따르지 않는다면 과정은 인정받지 못하는게 현실이었다. 그에게는 구단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도 있었다. 그의 마음 한편에는 걱정과 근심이 쌓였다.


빌리빈은 선수 시절 큰 좌절을 경험했었다. 그는 고교시절 야구는 물론이고 미식축구에서도 큰 재능을 보여준 스포츠맨이었다. 그의 뛰어난 운동능력은 프로구단에서도 그를 주목하게 됐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접근했다. 빌리빈은 이미 미식축구 선수 특기로 명문대학교 진학을 앞둔 상황이었다. 빌리빈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택했다. 메이저리거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도전했던 빌리빈은 좀처럼 성장하지 못했다. 그는 유망주로서 기대를 하게 하는 선수였고 연습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지만, 실전 경기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빌리빈은 5년간 5개 팀을 전전하다 27살의 나이에 오클랜드에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그는 스카우터를 시작으로 오클랜드 프런트에서 경력을 쌓았고 단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선수로서의 실패가 빌리빈에게는 프런트로서 성공으로 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됐지만, 그 실패의 기억은 항상 그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다.

 

이는 그에게 단장으로서 성공에 대한 일종의 강박증으로 다가왔다. 이는 단장이면서도 자기 팀의 경기를 마음 놓고 볼 수 없게 했다. 그는 자신이 팀의 패배를 보는 것을 힘들게 했다. 마치 자신이 경기를 봐서 팀이 패배했다는 식의 징크시를 스스로에게 만들었다. 그는 성공에 대한 확신도 있었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빌리빈은 복잡한 마음을 계속 다잡고 자신의 설계대로 팀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의도대로 팀을 운영하지 않은 감독에 맞서 선수 트레이드를 단행하는가 하면 선수 영입 작업도 주도했다. 또한, 세이버메트릭스의 효용성을 선수들에게 직접 설명하며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2002 시즌 초반 머니볼은 원했던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클랜드는 승보다 패전을 더 쌓았고 하위권으로 밀렸다. 당연히 빌리빈의 머니볼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 역시 이런 분위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빌리빈은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냈다.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팀 운영에 개입하고 선수들과의 거리를 두던 모습을 버리고 선수들에게 다가가 머니볼을 전파했고 팀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장악했다. 빌리빈이 팀 운영의 주도권을 잡은 오클랜드는 이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연승 수는 리그 후반기 계속 쌓여갔다. 메이저리그에서 주목받지 a못하던 오클랜드는 연승을 거듭하면서 화제의 팀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들은 최대 연승 신기록인 20연승에 성공했다. 그 과정은 매우 극적이었다. 오클랜드는 20연승에 성공한 경기에서 초반 11득점으로 여유있는 리드를 유지했지만, 중반 이후 마운드가 무너지면서 실점을 거듭했고 동점을 허용했다. 이대로 역전패을 당한다면 그동안의 상승세가 급 추락으로 반전될 수 있었다. 이미 19연승을 했던 오클랜드 선수단은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팀의 초반 대량 득점 소식을 듣고 모처럼 경기장을 찾았던 빌리빈 역시 깊은 좌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팀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 금기시해왔던 루틴을 깬 것이 패배로 연결된다면 그에게는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9회 말 오클랜드는 극적인 대타 끝내기 홈런으로 그들의 20연승을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 선수는 부상으로 본래 포지션인 포수로서 생명력이 다하고 메이저리그 이력을 더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빌리빈은 그의 높은 출루율에 주목해 그의 포지션 변경까지 제안하게 그를 영입했다.

 

이에 감독과 코치진은 크게 반발했고 그의 기용 문제로 빌리빈과 대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빌리빈의 고집으로 주전으로 기용되기 시작한 그 선수는 기대했던 활약을 했고 팀 중심 선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가 팀 역사에 남을 승리를 이끌었다. 그 끝내기 홈런은 머니볼의 성공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실제 오클랜드는 끝내기 홈런으로 20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빌리빈은 머니볼은 챔피언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포스트시즌 경쟁력에 있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2002 시즌 시즌 103승을 했던 오클랜드는 그 해 포스트시즌 1라운드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에도 오클랜드는 정규리그에서 강세를 보이면서도 포스트시즌에서는 부진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이를 머니볼의 한계라고 비판했다. 실제 포스트시즌은 통계와 분석의 영역을 넘어서는 무대라 할 수 있다. 단기전인 만큼 몇몇 선수들의 활약이 시리즈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승패와 직결되기도 한다. 그런 경기를 많이 해본 선수들의 경험치가 크게 작용할 수 있는 이는 데이터에서는 나타낼 수 없는 영역이다. , 누적된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한 세이버메트릭스를 적용하기가 어려운 여건이다.

 

빌리빈에게 포스트시즌 실패는 그동안의 성과를 퇴색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 역시 마지막에 이기는 이가 진짜 승자라고 했다. 이후에도 빌리빈은 넘지 못한 그 벽을 넘기 위해 매 시즌 온 힘을 다했고 도전했다. 그런 도전이 오클랜드를 그리고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포스트시즌에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 머니볼은 메이저리그 가난한 구단들에게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길이 됐다. 이를 적용해 성공한 구단들도 늘어났다.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야구로 성공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오클랜드 외에 마이애미 말린스, 캔자스시티 로열즈 등이 스몰마켓 팀의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이들 외에도 머니볼 이론은 메이저리그 구단 운영에 영향을 줬다. 부자 구단들도 이를 활용했다. 대표적인 팀이 메이저리그 명문팀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영화 말리 보스턴의 구단주는 빌리빈에게 거액의 스카우트 제안을 했다. 실제 보스턴은 빌리빈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했다. 빌리빈은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보스턴은 기존의 전력 강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우수 선수를영입해 전력을 강화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지양하고 대신, 세이터메트릭스를 적극 활용하며 구단 운영 기조를 변화시켰고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저주이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리고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머니볼 이론은 빌리빈에 의해 시작됐지만, 진정한 성과는 부자구단 보스턴에서 먼저 결실을 맺은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빌리빈은 그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청춘을 바치며 함께 했던 오클랜드에서 이기는 야구를 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오클랜드와 빌리빈의 인연은 영화가 만들어진 2011년을 지나 긴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머니볼의 핵심인 세이버메트릭스는 메이저리그를 넘어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선수 평가에 있어서 관점을 변화시켰고 전통적인 기록외에 출루율에 대한 가중치를 높였다. 높은 출루율은 많은 연봉으로 이어졌다.

 

가장 성공한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한 명인 추신수가 대형 FA 계약을 따냈던 배경에는 높을 출루율과 수준급 장타율이 있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는 이제 현대 야구에서 타자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표로 자리를 잡았다. 이 또한 머니볼의 유산이다.

 

그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존재한다. 야구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이 빠지고 사람이 게임 속 캐릭터화 된다는 점은 경계할 부분이다. 모든 팀들이 이를 신봉하게 된다면 야구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경기에 대한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는 단점도 있다. 머니볼 이론에서 중시하는 출루율은 많은 공을 보고 끈질긴 볼카운트 승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야구가 가진 매력을 잃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메이저리그는 이런 우려와 달리 막강한 자금력으로 우수한 선수를 대거 영입해 전력을 강화하는 뉴욕 양키스와 같은 빅 마켓 구단과 오클랜드와 같은 저비용 교효율을 추구하는 구단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대조적인 색깔의 구단들의 대결은 메이저리그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기존의 머니볼 이론 역시 시대 변화가 맞게 변화되고 새롭게 응용되고 있기다 하다. 그럼에도 머니볼 이론은 메이저리그의 새 역사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 머니볼은 원작을 바탕으로 그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며 재현하는 듯한 다큐를 보는 느낌의 영화였다. 하지만 그 스토리 자체가 너무 극적인 탓에 영화내내 긴장감을 가지게 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그리고 믿고 있었던 성공의 길과 다른 성공을 길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온 영화였다. 이 점에서 영화 머니볼은 성공을 위해 앞만보고 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휴식을 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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